Focus

“동아시아 의학, 근대적 사유의 대안 될 수 있다”

2019-06-12 연구/산학

한의과대학과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지난 5월 22일(수) 서울캠퍼스 스페이스21 한의학관에서 국제심포지엄 ‘대안적 가능성으로서의 한의학(East Asian Medicine as an Alternative Potential)’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융합학문으로서 한의학의 가능성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됐다.

한의과대학·한국한의학연구원, 국제심포지엄 개최
‘대안적 가능성으로서의 한의학’ 주제로 한의학의 가능성 조망

가뭄과 홍수, 이상 기온 등으로 지구사회는 몸살을 앓고 있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북극곰뿐 아니라 인간도 위태로운 상태이다. 한반도의 극심한 미세먼지도 비상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기후변화가 일으킨 위기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고 많은 학자가 지혜를 모으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 이후의 서구적 사유에 대한 반성이 잇따르고 있다. 자연을 인간의 복리(福利)를 위한 도구로 생각해온 서구의 사고가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낳았다는 견해가 이를 뒷받침한다.

석학들은 지속 가능한 지구사회를 위해 인간과 자연을 분리한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사고의 틀을 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 중 하나가 동아시아의 사유이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 걸맞게 동아시아 사유,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의학, 한의학에 주목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정작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동아시아 사유는 급격한 근대화를 거치며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온지라 이번 심포지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의과대학과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지난 5월 22일(수) 서울캠퍼스 스페이스21 한의학관에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 ‘대안적 가능성으로서의 한의학(East Asian Medicine as an Alternative Potential)’은 동아시아의 사유를 잃지 않은 한의학을 재조명하고 융합학문으로서 한의학의 가능성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됐다.

철학, 인류학, 시스템 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학자 참여
심포지엄에는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Francois Jullien) 파리7대학 교수와 시스템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Denis Noble) 옥스퍼드대학 교수, 인류학자 주디스 파쿼(Judith Farquhar) 시카고대학 교수, 철학자 프레드리히 발러(Friedrich Wallner) 빈대학 교수, 중국 소수 민족 의학 연구자 릴리 라이(Lili Lai) 북경대학 의대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가 발표자로 참여했다.

이재동 한의과대학장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가 모여 동아시아 의학을 토론한 이번 심포지엄은 큰 의미가 있다”며 “동아시아의 사유는 대안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의학은 평가절하됐고, 많은 경우 보완적인 의료 개입으로 간주돼 왔다. 이번 심포지엄이 동아시아 의학의 대안적 잠재성을 알리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심포지엄의 문을 열었다.

박영국 총장 직무대행은 “동아시아 의학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인간과 세상의 기초에 대한 학문”이라며 “기후변화 등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때, 동아시아 의학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의학은 기술이나 공식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번 심포지엄이 지구적 이슈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축사를 마쳤다.

데니스 노블 교수는 한의학 처방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지배적인 과학적 사유 방식을 돌아보길 촉구했다.

동아시아 의학의 대안적 가능성, “고정되거나 규정돼 있지 않은 기(氣), 생명력”
첫 번째 발표를 진행한 데니스 노블 교수는 “전통 의학의 멀티 스케일 시스템 분석(Multi-Scale Systems Analysis of Traditional Medicine)”을 주제로 한의학 처방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유전자 프로그램과 같은 ‘특권적 수준의 인과관계(privileged level of causality)’에 익숙하다”고 언급했다. 조직, 기관 등과 같은 높은 수준에서 분자, 세포와 같은 낮은 수준으로 내려가며 모델을 구축하고, 이 모델을 토대로 약물의 작용을 선택하는 인과관계가 단순하고 일방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배적인 방법론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과학의 사유방식은 확실하다는 이유에서 선호돼왔지만, 이는 중층적이고, 양 방향적인 복수(複數)의 관계에 대해서는 눈감게 했다”고 비판했다.

프레드리히 발러 교수는 “구성적 실재론: 전통 의학을 이해하는 열쇠(Constructive Realism: The Key to Understand Traditional Medicine)”를 발표하며 계몽주의 이후 과학에 투영된 서구의 지배적 사유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서구에서 과학은 자연을 순수하게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본다”며 “서구의 과학은 현상 너머로 가려고 하면서, 동아시아 의학은 현상을 연결하며 자연에 접근한다”고 언급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의 과학과 동아시아 의학의 비교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을 분명히 하며 지배적인 사유 방식에 규정되지 않는 대안적 공간을 제시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 교수는 대안적 사유의 공간에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사이’는 ‘존재함’이 아니다(Between is Not Being)”라며 존재와 존재론에 대한 전제를 뒤흔든다. 줄리앙 교수는 “서구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경향이 놓치고 있는 것을 동아시아의 사유가 밝혀낼 수 있다”며 ‘사이’를 강조했다. 그는 변화와 기(氣), 생명력이 고정되거나 규정돼 있지 않다며 동아시아 의학의 대안적 가능성을 ‘사이’로 풀어냈다.

“주도적인 사고 틀과 대안적인 사고 틀 사이의 관계 고찰해야”
의학 분야에도 인문학이 필수라고 주장하는 릴리 라이 교수는 최근 중국의 소수민족 의학 연구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번 발표도 소수민족 의학의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인류학자인 주디스 파쿼 교수는 발표를 통해 동아시아 의학이 물적 토대가 확실한 의학이라며 동아시아 의학의 존재론이 조명돼야 할 이유를 밝혔다.

릴리 라이 교수, 주디스 파쿼 교수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앞서 세 교수가 발표한 내용이 공허한 것, 주관적인 것, 관념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라이 교수는 의료체계 자체의 물질성을 밝히고, 파쿼 교수는 “모든 의학은 실질적인 것을 통해 작동한다”고 단언하며 의학이 항상 물질성 위에서 작동함을 강조했다. 또한 기, 증(證), 장부(臟腑)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통해 동아시아 의학의 물질성을 드러냈다. 동서 의학 사이에서 차별화하는 물질성의 토대 위에 다른 정치의 가능성, 다른 의료 실천의 가능성, 차별화되는 물(物), 존재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태우 한의과대학 교수는 “정신-물질, 문화-자연, 인간-비인간과 같은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존재 방식에는 분절과 구획이 핵심 전제”라며 “주도적인 사고 틀과 대안적인 사고 틀 사이의 관계를 고찰할 때 새로운 과학적 연구방법, 대안적 의료 실천, 대안적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체의 문제를 언급하며 “서구 철학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주체의 위치와 세계 속 인간의 위치를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대안적 가능성으로서 동아시아 사유, 동아시아 의학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지구가 직면한 위기와 같은, 인간(주체)-비인간(주체에 의해 규정되는 대상) 관계와 연결된 문제에 대한 대안적 논의가 새롭게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마무리했다.

글 박은지 sloweunz@khu.ac.kr
  정민재 ddubi17@khu.ac.kr
사진 이춘한 choons@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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