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세계 오페라계의 떠오른 별 김건우 동문의 후배사랑

2019-08-12 교류/실천

로열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 최초 주역 데뷔, 한국인 최초 ‘토니오’ 역의 주인공인 김건우(성악과 05학번) 동문. 김건우 동문은 지난 7월 18일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는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La Fille du régiment)>의 토니오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도니체티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 토니오 역으로 런던 로얄오페라하우스 성공 데뷔
국제 콩쿠르 우승 및 유럽 무대 진출 경험 살려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진행
“선배의 말 한마디가 큰 힘 돼··· 후배들, 좋은 케이스 보고 희망 키워야”

2016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이자,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해 ‘도밍고 콩쿠르’로 잘 알려진 ‘오페랄리아(Operalia)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건우(성악과 05학번) 동문. 이후 로열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서 경험을 쌓아 영아티스트 최초로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는 로열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주역으로 데뷔했다.

김 동문은 도니체티의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La Fille du régiment)>에서 토니오 역을 맡았다. 이 오페라의 테너 아리아, 특히 ‘친구여, 오늘은 기쁜 날(Ah, mes amis)’은 하이 C가 계속 반복돼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데, 김건우 동문은 이를 성공적으로 소화하며 관객에게 기립박수와 극찬을 받았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김 동문은 오는 8월 18일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국내 갈라 콘서트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방한할 적마다 모교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멘토링을 꾸준히 해온 김 동문이 올해에도 음악대학을 찾았다. 그동안 유럽 무대에서 거둔 성과와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김건우 동문을 만났다.

한국인 최초의 ‘토니오’, 로열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 최초 주역 캐스팅
Q. 한국인 최초로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의 주역을 맡았다. 로열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가 주역에 캐스팅되는 것도 처음이라 들었다. 소감이 어떠한가?
배역을 맡게 됐다는 것을 알고 처음 며칠은 긴장되고, 기분 좋고, 들뜨고 그랬다. 작품을 준비하며 흥분 같은 건 많이 가라앉았고, 평범한 일상처럼 무대를 올리고 내려왔다. 준비를 오래 해서 특별히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았다. 다 끝내고 나니 이제 힘든 세상으로 나간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로열오페라를 벗어나 모든 일을 홀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Q. 지난해 첫 리사이틀 때도 아리아 ‘친구여, 오늘은 기쁜 날(Ah, mes amis)’을 불렀다. 하이 C가 9번이나 나오는 곡인데, 오페라 무대에서 11번을 불렀다고 하더라. 콘서트가 아닌 오페라 무대에서는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콘서트에서는 타이밍을 조절할 수가 있다. 쉼이 필요하거나 숨을 골라야 한다 싶으면 곡 시작 전에 휴식을 취하고, 준비 시간을 조정한다. 그런데 오페라 무대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극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무대에서 여러 차례 연습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면 안 되겠구나, 좀 더 빨리 노래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훈련밖에 답이 없다.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로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김건우 동문(사진 가운데) ⓒNeil Gillespie

일상이 연습, “오히려 일탈이 어렵다”
Q. 그간 국내외 주요 콩쿠르에서 많은 상을 거머쥐었고, 여러 무대에 올랐다. 어떤 노력이 있었는가?
콩쿠르는 알고 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물론 콩쿠르도 똑같은 무대니까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콩쿠르 무대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스스로 많은 것을 계산해야 하고, 디테일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어려운 것은 맞다. 전에는 나도 콩쿠르에 나가서 어중이떠중이 중 하나로 ‘불러 젖히고’ 나왔다. 그런데 콩쿠르도 무대를 만드는 것처럼 하니까 상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별것 아닌데, 그것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듯싶다.

오늘 연습이 잘 되면 내일은 쉬고, 오늘 연습이 잘 안 됐어도 내일 쉬고. 연습 패턴이 엉망인 사람들을 봐왔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삶이 나에겐 용납이 안 됐다. 나는 잘했던 게 아니어서 안 되면 될 때까지 연습했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연습하고······. 그게 습관이 되니 연습 자체가 일상이 됐다. 일상이 연습이고, 종일 노래를 생각한다. 그래서 콩쿠르를 대비한 특별한 준비는 없었다.

지금도 매일 연습한다. 오히려 일탈이 어렵다. 다행인 건 일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는 놀아야지’ 하면 그게 더 불안하다. 내일 소리 안 나면 어떡하지, 알던 것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면서 불안해하기보다는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을 잘 살고, 안 다치고 오래 가자고 생각한다.

꼴찌였지만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선배들의 사랑
Q. 학부 때 실력이 특출 난 학생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인가?
당시만 해도 음악대학은 시쳇말로 ‘군기가 빡셌다’. 합창 수업처럼 단체로 하는 게 많아 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00학번 선배들이 군기의 고리를 끊어줬다. 선배들이 방패막이가 돼 사랑으로 후배를 보듬었다. 그래서 애교심이 더 커진 것 같다. 그 선배들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사랑으로 보듬을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실력도 있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 하더라. 좋은 관계가 대물림됐고, 그래서 경희대에서 공부하는 게 좋았다.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입학 당시 나는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했다. 나는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실기시험을 보고 무너졌다. 원래 점수나 등수가 공개되지 않는데, 몇몇 학생이 교수님 방에서 몰래 등수를 알아 와서 나도 뒤늦게 알게 됐다. 알고 보니 꼴찌였다. 나를 비롯한 꼴찌 4명이 음료수라도 뽑아먹자며 자판기에 갔는데 4학년 선배가 등수를 묻는 것이 아닌가. 다 같이 꼴등이라고 답하자 그 선배는 “너희들, 일등이랑 일 점 차이도 안나. 지금 그렇게 차이 나는 건 의미 없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 덕분에 다른 길을 찾지 않고, 다시 연습실에 갈 수 있었다.

또 기억에 남는 선배가 있다. 음악대학은 1학년 때 신입생연주회를 하는데, 내 무대를 보고 다들 의견이 분분했다. 콧소리가 너무 많다는 둥 비판이란 비판은 다 받았다. 그런데 어떤 선배 한 명이 “나 너 너무 좋게 봤어”라고 딱 한 마디 했는데, 그 칭찬이 마음에 남았다. 그런 선배들 덕분에 용기가 생겨 노래를 계속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한 음악대학 콘서트홀을 찾은 김건우 동문은 연신 ‘좋아졌다’며 감탄했다. 김 동문은 “선진 교육시스템을 배워 오신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에게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 주시고, 음악대학도 커리큘럼에 변화를 주고, 해외 대학과 교류 협정을 체결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고 기대를 보였다.

“‘진짜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Q. 로열 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이 끝났다. 이후 행보가 궁금하다.
다음 시즌에 새롭게 들어가는 작품이 6개다.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 , 도니체티 오페라 <돈 파스콸레(Don Pasquale)> 등이다. 한국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Q. 자녀가 셋이라고 들었다. 영국에서 보내는 삶이 힘들지는 않은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어서 폭발적인 집중이 가능하다.(웃음) 아이들이 달려들기 전에, 한두 시간 안에 악보를 외워야 한다. 가족에게 고맙다. 힘든 삶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고 느낀다. 음악가 처지에서는 유럽에서 터 잡는 게 어려우니 시작한 김에 오래 하고 싶다. 오래 해야 나중에 한국사회에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설프게 하고 오면 누군가에게 어설픈 것밖에 못 나눠주니까 제대로 하고 싶다.

Q. 노래할 때 집중하는 것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고, 국내 대학에서는 잘 가르쳐주지 않는 것 중 하나인데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노래할 때마다 어떤 감정인지 묘사하고, 설명하고, 뚜렷하게 파악해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진짜’를 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은 소리에 치우쳐있다. 학교 안팎에서도 소리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려고 한다. 소리가 조금 부족해도, 고음을 좀 못 내고, 실수하더라도 끼가 분출되는 게 있다면 그걸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 소리 갖고는 안 돼, 우리나라에서 안 먹혀’ 이렇게 접근하는 게 현실이다.

외국에서 배우고 활동하며 기술적인 부분과 감정 표현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실력을 갖춰야 하는 것도 맞지만, 표현도 동반돼야 한다. 그래서 감정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만족감이 떨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연대의 아가씨’의 토니오는 ‘나’ 그 자체였다.

“후배들은 더 좋은 길을 가길 바란다”
Q. 기회가 될 때마다 후배들을 멘토링 한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내가 살기 위해서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다. 한국 무대에서, 세계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공허함이 찾아오더라. 나 이전의, 나 이후의 누군가가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한국의 다른 대학 출신 친구나 외국인 친구를 보면 서로 정보도 많이 주고받고 서로 도우며 함께 해나간다. 그런데 경희대는 터놓고 얘기할 선배, 후배가 없다. 그래서 함께하려고 하는 것이다.

후배의 뒤를 봐주는 게 아니고, 조금 더 알고 미리 준비하라고 일러준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니라, ‘이것보다 조금 더 나은 길이 있는데, 너희는 이 길로 갔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이런 준비가 있어야 해’라는 걸 일러주고 준비를 돕고자 한다. 그러면 후배들은 나보다 더 일찍 성공할 수 있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간다. 정보교환도 빠르고, 지구 반대편에서 어떻게 노래하는지 유튜브로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늦은 거였다. 늦었지만 전략적으로 준비가 잘 돼 있는 케이스라고 할까. 나의 경우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외국인이고, 키 작고, 얼굴 크고. 무대에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단점을 보완하고 싶어서 무대에서 커 보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 부분까지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북돋아 주려고 한다.

김건우 동문과 함께 음악대학을 찾은 박성환(성악과 11학번, 동 대학원 석사졸업) 동문은 지난 5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미르얌 헬린 콩쿠르’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올랐다. 박성환 동문은 “첫 유럽국제콩쿠르 도전이었는데 김건우 선배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성악과 동문의 끈끈한 정을 느꼈다”며 “선배가 추천해준 오디션에서 선발돼 전액 장학으로 이탈리아에서 게오르그 숄티 아카데미(Georg Solti Academia) 프로그램을 하고 왔다. 유럽진출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케이스를 봤으면 좋겠다. 물론 내 케이스도 도전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케이스를 봐야 한다. 그래야 희망을 품고 어린 나이부터 도전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면 좋겠다. 신입생 때 멋모르고 살다가 3, 4학년 때부터 고민하는 후배들이 많다. 그런 후배가 대체로 다른 일을 하거나 돈벌이에 나서 더 고민하고, 낙담하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이번에도 후배들을 모아 멘토링을 하려고 한다.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김건우 동문 프로필>

경희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거쳐,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에서 수학했다. 2015년 몬트리올국제콩쿠르 그랑프리, 2016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준우승, 2016년 오페랄리아콩쿠르 우승 및 청중상 등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2015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로 국내 무대에 데뷔했으며, 2016년 독일 루돌슈타트 극장에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2017년에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오페라 <청교도>,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세미라미데>, <살로메>, <맥베드>, <사랑의 묘약> 등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9년에는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의 주역을 맡았다. 2016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독창회를 열었고, 2017년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공연 무대에 올랐다. 2019/20 시즌에는 유럽, 미국 및 대한민국 대구에서 오페라 무대가 예정돼 있다.

글 박은지 sloweunz@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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