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하는 위기, 더욱 명백해진 상호 연결성
특별대담은 5년 전 세 학자의 화두였던 ‘긴급성 시대’에서 출발했다. 지난 5년 팬데믹, 기후 위기, 지정학적 갈등, 기술 혁신 등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 그 ‘긴급성’이 일시적이거나 국지적 현상이 아님을 재확인했다. 오히려 시대의 절박성은 우리 일상과 사고방식에 더 깊게 뿌리내렸다. 새로운 현실이 됐다. 이번 대담은 이 같은 시대 흐름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어떤 노력을 통해 전환 문명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함께 성찰했다.
송 교수는 “지구 문명 붕괴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적 예측과 경고가 지속됐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문명 전환에 성공하지 못했다. 5년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며 그 이유를 묻는 말로 대담의 문을 열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그동안 더욱 명백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위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동인과 위기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백 년간 자유민주주의를 이끌어온 미국조차 리더 역할 수행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온 국제질서를 크게 흔들고 있다. 그 영향으로 또 다른 지정학적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조인원 박사님이 앞서 기념사에서 언급했듯이, 기후 위기와 핵무기 확산의 지구적 여파 등 행성적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과학기술 혁신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혼돈을 심화하고 있다. 문명이 길을 잃었다. 더 큰 문제는 인류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낙관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새 시대를 열 자신감마저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레스케스 교수도 이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왜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어 그는 근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300년 가까이 과학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과학 지식을 경청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실 정치에서는 권력 쟁취와 유지 수단으로 과학을 부정한다. 기후 변화조차 거짓이라고 말한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매우 우려스럽다. 과거 보수주의는 기존 가치와 제도, 법치를 존중하는 데 기반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보수주의는 어떤가. 국가의 역사와 현실, 과학적 사실을 부정한다. 팬데믹과 백신의 성공, 기후 변화의 현실까지 부인한다. 이런 정치가 가능했던 이유를 곱씹어보면, 결국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그 토대를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성장의 이면을 직시하지 않거나 외면한 결과, 그에 대응하는 정치가 자리 잡지 못했다. 쉽지 않지만, 우리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마거릿 대처는 정치인 시절 TINA(There is no alternative·대안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 항상 대안은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다.”
“지구 행성의 위기, 결국 인간 의식 문제”
조 박사는 지구 행성의 위기가 결국 역사적인 것임과 동시에 인간 의식 문제임을 논했다. 그런 시각에서 근본적인 해결 방향을 모색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인간 의식, 시대의 대세를 이루는 집단의식의 결과다. 그 의식의 역사적 흐름에 국한해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은 스스로 만든 ‘인위적 틀과 구조’에 갇히고 만다. 최근 몇몇 국가의 ‘핵무기 사용 불사’ 발언도 그중 하나다. 현대사회를 추동해 온 자국의 생존 논리와 현실 논리의 틀 안에서만 그 발언을 바라보면, 합리적 선택처럼 비칠 수 있다. 그간 치열한 각축을 벌여 온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이 관점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말 그대로 파국이다. 최근 두드러지는 ‘자국만의’ ‘자국 먼저’의 정치적 기류는 그런 우려를 더 깊게 한다. 국가 실존의 의미를 원자화된 국가, 기계론적 범주에 엄격히 묶어 두는 의식. 끝없는 경쟁과 대립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홉스주의적 세계관(Hobbesian world-view). 여전히 오늘의 현실 정치에 깊게 자리 잡은 그 집단의식은 가공할 붕괴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벼랑에 서 있다. 핵을 앞세운 세계대전 가능성이라는 유례없는 붕괴 시나리오를 손에 쥐고 있다. 오늘의 인류 사회는 고전적 인간 현실의 사유 체계를 넘어서야 한다. ‘실존’의 또 다른 지평을 찾아 나서야 한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전체에 이로운 것은 내게도 좋다.’ 그런 ‘전일사관’의 대전제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행성 의식’의 지구적 확산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길이 파국을 막을 마지막 수단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와 지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더 깊게 사유해야 한다.
경제적 이해관계와 폐쇄적 국익을 넘어서는 인류의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염원하는 미래, 지속 가능한 미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공존을 위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과 생존을 위해 서둘러야 할 시대의 긴급 과제다.”
이어 조 박사는 “그런 생각의 배경엔 핵전쟁 시나리오뿐 아니라 또 다른 암울한 이야기도 있다. 이제 위기를 넘어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 행성의 기후 현실이다. 인류적 삶의 근본을 크게 흔들 기후 재앙의 가능성. 그 임박한 현실의 문제다”라며 이 같은 생각을 펼치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지난 20여 년 기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지난 세기말부터 인류가 이어온 ‘거대 지체(Great Dithering)’ 현상에 주목했다. ‘왜 그런 지체인가.’ ‘이것이 만들어낼 미래는 무엇인가.’ 그런 문제의식과 함께해 왔다.”
지구 행성의 역사에 비춰보면, 인류가 지구 산업문명에 진입한 지난 300년은 찰나에 불과하다. 빙하기 이후 1만2000년 동안 안정적이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지구 평균 온도가 이 짧은 기간 동안 거의 수직으로 치솟았다. 학계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주원인으로 본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1988년, NASA 기후과학자 제임스 핸슨(James Hansen)은 미 상원 에너지·천연자원위원회 청문회에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이 통계적으로 뚜렷하다. 그 원인은 인간 활동에 기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다”라고 증언했다. 이후 기후 과학계의 합의는 점차 공고해졌지만, 국제사회는 이에 상응하는 전환을 이끌지 못했다.
그 후에도 기후 변화를 둘러싼 ‘진실 대 거짓’ 공방만 지루하게 이어졌다. 지난한 여정 끝에 2015년 파리에서 역사적 합의가 있었다. 전 세계 195개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금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약’을 채택했다. 모든 국가는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각국의 목표 이행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결국 2024년 지구 평균 온도는 1.5도를 초과했다. 세계는 지금 기후 위기의 변곡점을 넘어서고 있다.
조 박사는 “이 상황을 단순히 과학 모델의 불완전성이나 정책 지연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 문제는 따로 있다. ‘의식 지체’의 문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기후 변화를 일상과 무관한 자연 현상으로 인식했다. 경제 성장과 국익만을 최우선시하는 현실 정치의 고정관념이 지구적 관점 형성을 가로막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각국이 그간 약속해 온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목표는 거의 파기 상태나 다름없는 것이 됐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우리와 지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더 깊게 사유해야 한다. 경제적 이해관계와 폐쇄적 국익을 넘어서는 인류의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염원하는 미래, 지속 가능한 미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공존을 위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과 생존을 위해 서둘러야 할 시대의 긴급 과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나오미 오레스케스 교수는 “양자물리학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본질을 완전히 보지 못한다.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우리는 행성 시민으로서 그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 스스로 노력해 정보와 지식을 쌓고, 가짜 뉴스와 잘못된 정보에 맞서야 한다. 시민은 단순한 정보 수용자를 넘어 윤리적 감수성과 참여 의식을 지닌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웹캐스트 갈무리.
“전일사관(全一事觀)과 같은 종합적·포괄적 사유가 필요하다”
송 교수는 반세기 넘게 반복적으로 경고·예측됐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의식의 행성적 전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런 맥락에서 대담을 이어갔다. 그는 “이제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전환에 나서야 한다. 과학계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레스케스 교수님이 지난해 여러 학자와 함께 발표한 논문 「위기에 처한 지구: 파멸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긴급 호소(Earth at Risk: An Urgent Call to End the Age of Destruction and Forge a Just and Sustainable Future)」에서도 그 흐름을 보여준다”며 과학계의 관점 변화에 주목했다.
오레스케스 교수는 “처음에는 공저자 참여 요청을 거절했다. ‘또다시 경고성 논문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미 수십 년간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도 여섯 차례 보고서를 발간했다. 수백만 페이지에 이르는 과학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러나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오레스케스 교수는 그동안 현대 자본주의·물질주의 문명의 한계를 경고해 왔다.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강연, 학술 활동, 정책 자문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해 왔다. 2014년에는 독특한 저서 한 권을 출간했다.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The Collapse of Western Civilization: A View from the Future)』이라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공상과학소설 형식을 빌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그는 “인류가 절대 그 길을 선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악의 미래를 보여줬다. 그런데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던 그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 변화만 보더라도 이제는 폭염, 폭우, 홍수, 한파, 폭설, 태풍, 가뭄, 화재가 지구 행성 곳곳에서 일상처럼 발생한다”며 우려를 전했다.
이런 경험 탓에 이번 논문 발표도 처음엔 회의적이었다고 설명한 그는 “참여를 결정한 이유는 기존과 다른 접근 방법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단순히 데이터를 제시하며 경고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큰 담론을 제시하려 했다. 오레스케스 교수는 “조인원 박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전일사관’과 같은 종합적·포괄적 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데 여전히 분절적·환원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이런 사유 방식 덕에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백신을 개발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에서 보았듯이 과학자는 사람들이 백신을 수용하도록 이끄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거시적 관점에서 위기에 대응하는 방안을 더 깊이 고민했어야 한다. 이번 논문은 눈앞의 이익보다 지구 중심의 장기적 생태계의 건강과 사회적 안녕을 우선하는 집단적 가치·행동·제도 전환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모든 실존의 연결을 통찰하는 전일적 사유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일사관이 오늘의 위기를 헤쳐갈 대안일 수 있다.
전일사관은 개별 사건을 분리된 사실로 보지 않고 우주적·역사적 관계망 속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다. 그 과정에서 인간 의식이 그 관계망에 참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역할을 강조한다.”
조 박사는 20여 년 전부터 대담과 저술을 통해 기존 지식 체계와 산업문명의 사유 방식의 한계를 성찰했다. 전환 문명을 향한 새로운 인식론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모든 실존의 연결을 통찰하는 전일적 사유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일사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전일사관은 개별 사건을 분리된 사실로 보지 않고 우주적·역사적 관계망 속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다. 그 과정에서 인간 의식이 그 관계망에 참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역할을 강조한다. 이번 특별대담에 앞서 열린 제44회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식의 기념사 ‘혼돈의 순간, 전일적 실존의 활로(The Moment of Chaos: A Quest for Holistic Engagement)’에서도 그런 주제를 다뤘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오늘 대담자들의 공통점은 지금 무엇보다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을 가졌다는 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긴급하게 해내야 한다. 장기적 관점을 가진다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가 보일 것이다. 역사를 살펴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참고할 수도 있다”며 1929년부터 1945년까지를 예로 들었다. 그 시기 인류는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파시즘, 전체주의, 홀로코스트, 원자폭탄 등 연이은 위기를 겪었다. 이 모든 위기가 2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그는 “그때도 인류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벗어났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전례 없이 거대하고 복합적이고 긴급성을 요구하는 만큼 ‘행성적 상상력(Planetary Imagination)’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상호 연결성 다시 깨닫고 협력할 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어 아이켄베리 교수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지구 공동 운명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 속 수많은 사상가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져왔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상호 연결성의 시대적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행성 의식(Planetary Consciousness)’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류 문명은 산업화 이후 모든 것을 물질 가치로 환원하는 기계론적 사유 체계를 만들어왔다. 삶의 일상은 자기중심적 이익과 욕망 쟁취를 위한 각축장이 됐다. 모든 존재를 대립과 경쟁의 대상, 원자화된 존재와 객체로 인식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분리와 경계의 인과 세계에 갇혔다. 자신과 타자, 인간과 자연, 자국과 타국의 이분법적 발상이 일상화됐다. 인류는 지구 행성에 존재하는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근원적 인식을 잃어갔다. 대담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짚으며, 인간·문명·지구·우주가 결국 하나의 현실임을 인식하는 것이 변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양자 인식론에 주목해 왔다. 저는 정치학을 전공해서 양자역학에는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양자 과학, 더 엄밀히는 양자 과학 인식론의 여러 전제에 관심을 둬 왔다. 이들이 인간 의식의 역사적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라고 말문을 연 그는 “현실과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봤다. 하나는 현상과 사물에 반응하는 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내면에서 비롯되는 성찰적 문제의식, 생성적 인간 시선 문제다. 오레스케스 교수님도 언급하셨듯이, 현대사회는 선형적 인과관계, 경계와 환원, 분절적·기계론적 사유에 기반한 사유 체계를 이어 왔다. 그 틀에서 생각하고, 현대적 이성과 합리의 보편타당성을 말했다. 자연과 물리 현상뿐이 아니다. 인간 의식과 사회, 정치·사회적 집단행동의 결과인 국제질서까지 그 틀 안에서 이해했다. ‘기성의 사유 방식과 관념만으로 과연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를 온전히 포착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품어 왔다”고 말했다.
“인간과 세계, 지구와 우주의 뗄 수 없는 상호 연결성을 되짚어야 한다.
그 역사적 의미, 문명사적 파장을 함께 상상하고 헤아리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열린 마음과 함께 관계와 연결의 문명사적 함의를 되짚는 전일적 사유가 필요하다.
그 사유는 중층적 위기의 시대를 헤쳐갈 지구적 실천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그는 “인간의 분절적·기계론적 사유 방식만으로 우주를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아직은 알 수 없는 ‘무(無)의 요동’ ‘우주적 심연의 작동 원리’ 같은 미지의 세계를 제한적 개념 속에 끌어들인 것뿐이다. 헤아릴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는 설도 오만의 산물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후, 핵 문제와 함께 인류의 실존에 유례없는 영향을 줄지 모를 UAP(Unidentified Anomalous Phenomenon·미확인 이상 현상)에도 관심을 둬왔다. 인간의 제한된 지식만으론 UAP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유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Unknown Unknowns) 영역으로 시야를 넓혀가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모름의 세계를 향해 길을 찾아 나서는 일. 이 과업은 과학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출발점일 것이다. 행성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아이켄베리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인간과 세계, 지구와 우주의 뗄 수 없는 상호 연결성을 되짚어야 한다. 그 역사적 의미, 문명사적 파장을 함께 상상하고 헤아리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열린 마음과 함께 관계와 연결의 문명사적 함의를 되짚는 전일적 사유가 필요하다. 그 사유는 중층적 위기의 시대를 헤쳐갈 지구적 실천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을 전했다.
양자 과학의 중첩과 얽힘, 비(非)국소성, 궁극적 결맞음 원리는 아원자(亞原子) 세계의 질서이기도 하지만, 우주적 질서, 생명 현상의 질서이기도 하다. 우주 변천 과정, 변화와 생성의 운행 과정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 인식론적 기초는 인간과 사회, 국제질서, 우주적 심연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기도 한다. 우리 의식과 관찰에 따라 미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서고금의 철학에서 존재하는 전일적 사유의 뿌리 깊은 전통과 함께 오늘의 양자 인식론의 기본 전제를 수렴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명사적 난제를 풀어갈 사유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조 박사의 시각이다.
오레스케스 교수는 “양자 인식론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한다”며 “양자물리학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관찰의 한계, 이해 역량의 한계를 통해 우리의 한계를 일깨운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본질을 완전히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양자물리학이 주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켄베리 교수님이 언급했듯이 인류는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 악행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겪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안타깝게도 20세기 중반에는 그 믿음을 실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의 위기를 마주하게 됐다. 우리는 결국 위기를 극복하겠지만, 그 과정에는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행성 의식으로의 전환과 고통을 이겨낼 길을 함께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