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산학, 의과학

한의대 고성규 학장 연구팀, 네이처 계열 최상위 저널 게재

2026.03.23

비소세포폐암 성장 돕는 새 신호축 규명
한의대 선도연구센터 파이프라인 활용 새로운 진단 치료 표적 가능성 제시


한의과대학 고성규 학장이 이끄는 한약물 재해석 암 연구센터 연구팀이 폐암의 가장 흔한 유형인 비소세포폐암의 성장과 생존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분자 기전(GPR54-DDC 축)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GPR54(KISS1R)라는 수용체 단백질이 Dopa Decarboxylase(DDC) 발현과 암세포의 에너지 대사를 조절해 종양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음을 전임상 모델에서 확인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 계열 학술지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IF=52.7)』에 게재됐다. (관련 저널 보기) 암세포의 신호전달과 에너지 대사, 종양의 증식과 생존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하나의 축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소세포폐암에서 GPR54–DDC 신호축이 암세포의 성장과 생존, 에너지 대사 재편에 관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식도.

이번 논문 제목은 ‘GPR54 regulates non-small cell lung cancer development via dopa decarboxylase’로 공동 제1저자는 한의학과 황현하, 이서연 박사다. 교신 저자 고 학장은 “최상위 저널에 오리지널 페이퍼를 발표한 것은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한의학계에서도 드문 일이라 더욱 뜻깊다”며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번 논문은 한약물 재해석 암 연구센터의 대표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황현하 박사 역시 “게재가 확정됐을 때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주위에서 축하가 이어질수록 기쁨과 함께 책임감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폐암세포 성장의 ‘새 스위치’ 발견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약 85%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치료 성적을 높이려면 암세포 성장 원인과 생존에 관한 핵심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GPR54라는 수용체 단백질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GPR54와 DDC가 비소세포폐암의 성장과 대사 재편을 함께 이끄는 신호축으로 작동하는 것을 새롭게 확인했다.

연구팀은 Kras 변이 유도 마우스 비소세포폐암 모델에서 GPR54 유전자를 제거했을 때 종양 수와 병변 크기가 감소하고, 세포 사멸은 증가하며 생존 기간이 연장됐다. GPR54가 실제로 비소세포폐암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 결과는 향후 임상적으로도 의미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개 데이터 기반 분석에서는 GPR54가 종양 조직에서 더 높게 관찰됐고, GPR54 mRNA 발현이 높은 군에서 생존 지표가 불리한 경향이 포착됐다. DDC 역시 종양에서 높게 나타났고 생존 지표와의 연관성이 보고됐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GPR54와 DDC가 비소세포폐암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이오마커이자 새로운 치료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고 학장은 “폐암 환자들은 치료를 시작할 때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다”며 “이번 연구는 표적치료제 반응 여부와 관계없이 주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꾸준한 몰입과 끈기로
연구 성과를 이끈 핵심 연구자”
황현하 학생(한의학과 박사 과정)

논문 게재를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린 황현하 박사. 이번 연구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교수님과 연구실 멤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새로운 표적 발견부터 최상위권 저널 게재까지
이번 연구는 하루아침에 나온 성과가 아니다. 고 학장에 따르면 “SH003(황기, 당귀, 과루근으로 구성된 복합 한약 제제)을 비롯한 한약물 기반 항암 연구는 10년 이상 이어온 연구 파이프라인”이다. 그동안 유방암과 폐암을 중심으로 연구를 축적해 왔고 현재는 비소세포폐암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팀이 이번 주제를 선정한 배경에는 ‘우리 약물이 실제로 작동하는 새로운 표적과 바이오마커를 직접 찾아보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기존에 알려진 기전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한약물 기반 연구가 실제로 맞닿아 있는 새로운 경로를 발견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GPR54라는 새로운 표적을 찾았고, 이것은 SH003 항암 물질 연구 파이프라인과도 밀접하게 연결됐다. 고 학장은 “이번 논문은 우리가 연구해 온 약물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의 경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논문 게재 과정도 쉽지 않았다. 연구의 완성도에 자신감을 갖고 저명 저널 게재에 도전했다. 첫 심사에서 ‘메이저 리비전(Major Revision)’이 나오자, 연구팀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보완 작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맡은 인물이 황현하 박사였다. 리비전을 준비한 4개월은 말 그대로 버티기의 시간이었다. 황 박사는 평균 수면 시간이 2시간에 그칠 만큼 밤을 새우며 데이터 보완에 몰두했다.

고 학장은 “황 박사는 주말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뚝심이 있는 연구자”라며 “막대한 예산과 대규모 연구진 없이도 좋은 주제를 선택한 선구안과 연구자들의 끈기가 더해져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라고 연구자들을 격려했다.


“융합 연구를 통한 한약물의
과학적 근거 확보, 국민적 신뢰 형성”
고성규 학장(한약물 재해석 암 연구센터 센터장)

고 학장은 “이번 논문 게재로 한의대에서도 생물학과 바이오, 화학을 기반으로 한 오리지널 페이퍼를 충분히 낼 역량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한의학과 바이오의 접점을 넓혀갈 것
한약물 재해석 암 연구센터는 한약물의 효과를 현대 의생명과학 언어로 검증하고, 그 기전과 근거를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 학장은 “암 환자들이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 전후에 한방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약물의 근거와 작동 기전을 충분히 설명할 자료는 아직 부족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센터의 목표는 한약물에 대한 신뢰도 높은 근거를 만들고, 양방과의 협력 가능성을 넓혀 국민이 믿고 한방 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비소세포폐암을 중심으로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GPR54–DDC 축이 실제 치료 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기존 항암제나 면역항암제와 어떤 병용 가능성을 보이는지, 또 한약물이 암 환자의 전신 상태를 악화시키는 악액질 완화와 연결될 수 있는지 등을 폭넓게 살펴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고 학장은 후배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오지에 길 하나를 낸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길 하나를 냈다면, 후배들은 그 길을 넓혀 언젠가 고속도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성과가 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 의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약물이 암 환자의 삶의 질을 돕는 동시에 표적치료제·면역항암제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근거와 기전을 밝히는 것이 연구팀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