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복잡해진 세계와 더 깊어진 위기 속 진실과 양심, 책임과 희망이라는 시민적 가치가 어떻게 우리 삶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탐색하기 위한 ‘하벨 다이얼로그’가 Peace BAR Festival의 한 프로그램으로 개최됐다.
제44회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회의 ‘Peace BAR Festival’ 하벨 다이얼로그
거대 이데올로기에 맞선 초월, 위기 속 희망을 전달하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이 무너졌다. 권력이 무너진 순간,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는 포화와 총성이 아닌 시민의 연대만이 존재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무혈 민주혁명 ‘벨벳혁명’의 순간이다. 故 바츨라프 하벨은 벨벳혁명의 주역이자, 체코 민주화의 상징으로 ‘진실 속에 살기(Living in Truth)’라는 윤리적 실천을 통해 전체주의에 맞섰다.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후 현재의 체코 대통령으로 재신임됐다.
한층 복잡해진 세계와 위기 속 하벨 정신 탐구
경희는 2015년 바츨라프 하벨에게 명예 평화학 박사학위를 추서한 바 있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맞서 시민과 정치의 새로운 책무를 일깨운 하벨의 실천이 학문과 평화의 전통 속에서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추구해 온 경희의 철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경희는 명예박사학위 추서와 더불어 그의 도덕적 정치철학과 시민윤리를 기리는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세계 곳곳은 전쟁의 화마에 휩싸였고, 정치는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층 복잡해진 세계와 더 깊어진 위기 속에서 하벨과 함께 진실과 양심, 책임과 희망이라는 시민적 가치가 어떻게 우리 삶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탐색하기 위한 ‘하벨 다이얼로그’가 제44회 유엔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회의 Peace BAR Festival의 한 프로그램으로 개최됐다. 9월 19일(금)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대화의 주제는 ‘시민적 가치와 참여, 하벨 정신의 재조명’이었다.
다이얼로그에는 토마시 세들라체크 하벨도서관 관장, 마틴 리터 체코 고등학술원 철학연구소 부소장, 박영신 전 경희학원 고황석좌, 신진숙 미래문명원 부원장이 패널로 참여하고, 이택광 외국어대학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이택광 교수는 유례없는 위기와 혼돈으로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짚으며, “경희가 지향하는 전일사관(全一事觀)과 하벨이 말한 초월성의 개념이 오늘날 문명 위기를 극복할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하벨 정신을 탐구하며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면서 대화의 방향과 취지를 밝혔다. 하벨 다이얼로그는 패널 발표와 대담으로 진행됐다.
펜이 무너뜨린 체제, 하벨이 전하는 메시지
세들라체크 관장은 부조리와 역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를 하벨 정신의 핵심으로 꼽았다. 공산정권 시기의 체코슬로바키아는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암흑의 시기였다. 누구도 쉽사리 희망을 품을 수 없고, 공고한 시스템이 붕괴하리라 생각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하벨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무수한 억압을 자행해도 하벨은 플라톤, 기독교가 주창한 희망의 메시지를 현실화했다. 그토록 공고했던 시스템을 무너뜨린 것은 전차도, 돈도 아닌 펜이었다”고 강조했다.
하벨은 불합리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시민의 각성을 이끌었다. 이것이 희망의 연대를 만들어냈다. 하벨의 외침은 결국 벨벳혁명으로 이어졌다. 당시 체코 시민은 인터넷도, 소셜네트워크도, 휴대전화도 없었지만, 하벨의 정신 아래 연대했고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평화롭게 체제 변화를 이끌었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아무리 깊은 어둠이라도 정복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지금 우리 사회에 주는 하벨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체코는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저항해 민주주의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공통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한국과 체코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달성한 것을 두고 하벨이 주창한 ‘유럽의 정신(the Spirit of Europe)’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하벨은 자신에 대한 회의와 비판적 사고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유럽의 정신이라고 봤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 종식된 후 하벨은 국경을 초월해 행성적 차원에서의 공존을 새로운 길로 제시했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유럽은 유럽연합을 통해 국가와 국민이 행성적 차원에서의 공존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선봉이라 여겨지던 미국의 후퇴는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시민의 정신적 토대 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하벨이 전하고자 했던 희망과 공존의 메시지를 나눴다.
초월과 시민의 책임이 민주주의의 토대
“세계는 독수리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자유의 힘. 어떤 경계도 제약도 걸림돌이 될 수 없는 만물 돌파의 기상.” 박영신 교수가 ‘현대 하벨 정신의 의의, 이론과 실존의 관점’에 관해 발표하며 정의한 하벨이다. 하벨의 사상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다. 제도를 넘어서는 ‘초월적 권위’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며 개인, 집단, 국가가 이기주의를 넘어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나눔을 통한 자기 초월을 요구한다. 박 교수는 현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초월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간의 양심과 도덕, 진리와 같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초월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하벨은 경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존적 현실을 돌파할 가능성과 정치의 역할을 믿었다”고 역설했다.
하벨은 현실을 우상화하지 않고, 부단한 도전과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했다. 이는 지식인만의 책무가 아닌 모든 시민의 책무이자 피하지 못할 숙명이다. 이런 전제를 제시한 박 교수는 지성의 품격을 갖춘 시민이 더욱 높은 초월의 가치를 배워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태도를 뚫고 나가기를 촉구했다. 아울러 “우주 지향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경희학원의 전통은 진리를 외친 하벨의 사상과 감응하며 진리를 새기고, 함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벨은 개인의 내적, 정신적 변화를 요구했고, 이를 기반으로 체제 전복에 성공했다. 리터 소장은 이에 주목해 두 명의 연사에게 내적인 변화와 외적 세계의 연관관계가 어떠한지, 하벨이 말하는 ‘비정치적인 정치’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세들라체크 관장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동일한 사회·문화적 환경과 교육을 받은 사람 사이에서도 다양하게 발현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내면적 다양성에 대한 성찰이 정치의 기초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인간은 상호 연결된 개인으로, 혼자서는 달성 불가능한 성취를 협력을 통해 이룬다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며 “민주주의와 진리 추구에도 이 구조는 적용된다. 한 개인의 단독적 노력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다양한 개인이 협력할 때 공동체가 진리에 가까워진다”고 답했다.
박영신 교수는 하벨의 사상이 초월적 권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시대와 국경을 넘어선 호소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저서 『도덕감정론』을 인용했다. 인간은 ‘공감(Sympathy)’ 능력을 지녀 이웃의 고통과 기쁨을 이해하고 감응할 수 있다. 이 공감 능력이 사회생활의 근본 토대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동감만으로 사회의 지속적 결속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 너머의 차원, 초월적 지향성이 수반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쉬운 것이 아니며,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표현같이 민주주의의 본질은 개인이 지닌 초월에 대한 책임감을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 중심의 세계관이 세계를 고갈시킨다
신진숙 교수는 발표를 들으며 하벨이 말한 ‘후기 전체주의 사회’ 개념을 다시 떠올렸다. 이는 경희학원 설립자인 미원(美原) 조영식 박사가 현대 문명사회를 비판하며 언급했던 문제의식과도 연계된다. 미원은 기술 발전과 조직화된 사회 속 인간이 체제에 예속되는 상태를 경계했다. 이는 하벨이 저서 『힘없는 자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에서 제시한 ‘자동화된 전체주의(auto totality)’ 개념과 유사하다. 하벨은 후기 전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삶의 체제’와 실존 혁명을 대안으로 강조했다.
이택광 교수는 이어서 하벨과 경희학원 철학의 연계성에 관해 물었다. 리터 부소장은 체코 철학자 얀 파토치카와 바츨라프 하벨의 사상을 연결해 설명했다. 파토치카와 하벨은 전체주의에 맞서 존재론적 차원의 윤리와 책임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공산정권의 인권 탄압에 저항하며, 인권 조항을 준수하도록 촉구한 ‘77헌장’을 주도했다.
이들은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이 중심이 되는 현대적 세계관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파토치카는 과학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의 주관적 경험과 도덕성을 경시한다고 비판했고, 하벨은 기술 중심의 세계관이 세계를 고갈시킨다고 경고했다. 시장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할 때 도덕적 책임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진실과 영혼의 결핍에 빠지는 상황을 예측했다. 리터 부소장은 “오늘날 더욱 복잡한 위기 상황 속의 해법은 하벨이 주창했던 기존 이데올로기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시민 개개인의 양심에 기반한 정치의 재정의 즉 반정치적 정치의 실천이 절실하다”고 결론지었다.
하벨은 기술 중심의 세계관이 세계를 고갈시킨다고 경고했다. 리터 부소장은 “시민 개개인의 양심에 기반한 반정치적 정치의 실천이 오늘날 위기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희망의 두 지표, 실존 혁명과 의식 혁명
신진숙 교수는 하벨과 조영식 박사의 사상을 초월성과 전일성, 그리고 우주적 맥락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했다. 그는 전례 없는 현대의 위기 속 하벨의 ‘실존 혁명’과 미원의 ‘의식 혁명’을 희망의 좌표로 소개했다. 하벨은 저서 『힘없는 자들의 힘』에서 후기 전체주의 사회를 거짓 속에 사는 삶으로 규정했다. 체제가 요구하는 부당함에 순응하는 순간, 개인은 체제를 인정하고 재생산하는 존재가 된다. 하벨은 양심에 귀를 기울인 개인의 실존적 결단, 진실 속에 사는 삶이 곧 정치적 행위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를 실존 혁명이라고 부른 하벨은 모든 인간은 존엄과 도덕적 고결함, 실존을 넘어서는 초월의식을 갈망한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저서 『인류사회의 재건』에서 기술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인간의 폐해를 비판하고 의식 혁명을 주창했다. 의식 혁명은 단지 가치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의식 문명 전체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한다. 조 박사는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전쟁의 대기를 평화의 대기로 전환하기 위해 인간 의식의 근원적 성찰과 창조적 의지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주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네트워크로 봤다. 그의 철학에서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나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인간은 네트워크의 일부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연결돼 작동한다. 이른바 ‘전승화(全乘和)’ 개념이다. 전승화 아래 인간은 자신과 타자, 자연, 역사,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전일적 관계망에서 인간만이 아닌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행성 사회의 평화를 지향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지녔지만, 20세기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한 두 현인은 현대문명의 위기 속 개인의 내면과 삶의 방식에 기반한 희망의 정치를 모색했다. 실존을 넘어선 초월적 차원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았고, 인간의 자기 인식과 자기 초월을 통해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제도 개혁보다는 의식, 윤리의 전환이 공통점이라고 설명한 신 교수는 “희망은 진실을 선택하게 하는 양심의 형식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신진숙 교수는 “희망은 진실을 선택하게 하는 양심”이라며 의식, 윤리의 전환을 촉구했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신 교수의 설명에 동의하며 전체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가치가 특정 권력층에 독점되는 문제를 짚었다. 진리, 가치의 독점은 하벨이 천착했던 문제로 우주적·보편적 가치에서 인간 존재를 성찰해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를 ‘진리의 공유 가능성’이라고 진단한 세들라체크 관장은 “자유민주주의는 다원적 토론과 협력으로 더 높은 가치에 접근할 수 있다. 힘이 집중된 국가보다 다원적 연대의 힘이 더 크다”고 설명하며 “힘없는 자들의 힘이야말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택광 교수는 유럽 국가가 권위주의 국가와 달리 중앙집중적 권력 구조보다는 다원성과 분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토론 주제를 전환했다. 그는 ‘오늘날의 실존적 위기 속에서 가능한 결정적 변화’와 ‘미래 시민은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 가지 공통 질문을 제시했다.
문명의 충돌 아닌, 문명의 경청이 불러올 미래의 희망
세들라체크 관장은 정신적, 영적인 가치의 추락을 인류가 직면한 실존 위기로 파악했다. 세들라체크 관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최선의 시대인가를 묻고, 최선의 시대로 만들어가기 위한 긍정적이고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터 부소장은 빅테크 기업이 일상에 침투하는 현 상황을 경계하면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유엔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리터 부소장은 “계몽된 시민사회가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며 교육된 시민의 양성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하벨은 한 강연에서 문명마다 다른 전통이 존재하며, 각 문명권을 존중하자고 주장했다. 각 문명권에서 초월을 지향하고, 문명과 문명이 경청하는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박영신 교수는 “하벨의 가르침에도 현대문명은 초월 지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벨의 시각이 오늘날 실존적 위기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평가한 그는 “문명과 문명이 서로 경청할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진숙 교수는 종말론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말론을 인용하며 희망의 본질을 재정의했다. 그는 “낙관도 비관도 아닌, 희망할 수 없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그럼에도 살아낸다고 하는 다짐은 실존적 결단과 선택의 용기”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우주는 무한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이라는 조영식 박사의 사상을 빌려 “우리 세계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낳는 관계망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사들의 열띤 토의는 청중으로 확장됐다. 이들은 현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을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 실천 방법을 물었다.
연사들의 열띤 토의는 청중으로 확장됐다. 질문은 개인의 실천과 시민윤리로 집중됐다. 첫 번째 학생은 기후 변화와 정치적 도전 등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이 실천해야 할 핵심 가치와 이를 개인적, 제도적 차원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물었다. 또 다른 학생은 선의가 왜곡되거나 냉소적으로 받아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시민의 가치로 선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리터 부소장은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주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공동의 노력을 실효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사회와 시장에서 최소한의 규범과 규제가 마련돼야 바람직한 실존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과 공동체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도 실행 단계에서 어려움에 부딪힐 현실을 지적했다.
경제학자이자 경제사상가이기도 한 세들라체크 관장은 경제의 본질을 예로 들어 답했다. 서로 다른 가치가 교환과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정치는 국익에 갇히지만, 기업은 국경을 넘어 살아남기에 초국가적 연결이 관용과 타협의 폭을 넓힌다. 그는 “이웃의 재난은 돕고, 성과를 함께 기뻐하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영신 교수는 획일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직접 바라보길 강조했다. 그는 “안목의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실질적 희망”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진숙 교수가 논의에 막을 내렸다. 그는 침묵의 의미를 강조하며 “‘왜 어떤 목소리가 침묵 당하는가’를 묻고, 침묵에 경청할 때 비로소 사회의 전모가 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