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산학

잡종 벼 생산의 난제를 풀다

2025.12.15
그린바이오과학원 정기홍 교수 연구팀이 잡종 벼 종자 생산을 위해 벼의 자가수분 능력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부분 웅성불임’ 벼를 구현하고, 종자 색으로 교배 여부를 구분하는 시각적 마커 기술을 개발했다. 사진은 연구팀이 개발한 ‘부분 웅성불임’ 기술의 작동 원리를 나타낸 개념도.

그린바이오과학원 정기홍 교수 연구팀, ‘부분 웅성불임–시각적 마커’ 기반 신개념 하이브리드 벼 생산 기술 개발
자가수분 제어·종자 선별 단순화로 종자 산업 구조 혁신 기대

벼는 대표적인 자가수분 작물이다. 외부 꽃가루보다 자기 꽃가루가 훨씬 먼저 암술에 도달해 교배가 일어나는 특성이 있어, 품종 간 교배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잡종 벼(하이브리드 벼)’ 종자 생산에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따랐다. 그동안 잡종 벼 종자 생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컷 기능이 사라진 ‘웅성불임’ 벼가 널리 활용됐다. 웅성불임 벼는 자기 꽃가루를 만들지 않아 외부 꽃가루를 통해 수정할 수 있어 잡종종자 생산에 적합한 구조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안정성이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존의 웅성불임 계통은 온도나 일장(낮의 길이) 같은 환경에 따라 불임이 풀리거나 유지용 품종을 따로 관리해야 하는 등 생산 체계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정기홍 교수.
꽃가루의 힘만 선택적으로 낮춘 ‘부분 웅성불임’ 기술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그린바이오과학원 정기홍 교수 연구팀은 벼의 자가수분 능력을 정교하게 조절해 외부 꽃가루의 교배 성공률을 대폭 높이는 새로운 잡종 벼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 기술(CRISPR/Cas9)을 활용해 벼의 꽃가루의 신장능력을 약화시킨 ‘부분 웅성불임’ 벼를 구현하고, 종자 색으로 잡종 여부를 즉시 구분할 수 있는 시각적 마커 시스템을 구축했다.

연구 결과는 식물생명공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Plant Biotechnology Journal(IF=10.5)」에 10월 온라인 게재되었으며, 이수경 박사과정생(그린바이오과학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이번 성과는 복잡하고 환경 변화에 민감했던 기존 잡종 벼 생산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부분 웅성불임’ 기술의 핵심은 성숙한 꽃가루를 완전히 없애던 기존 방식과 달리, 자가 꽃가루의 경쟁력만 선택적으로 낮추는 데 있다. 이는 꽃가루는 정상적으로 성숙하지만 암술 속 깊은 곳까지 충분히 자라지 못하도록 조절해 외부 꽃가루가 자연스럽게 교배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벼의 꽃가루 발아와 신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GTrD5·GTrD9 유전자에 주목했다. 해당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CRISPR/Cas9) 기술로 정밀하게 조절한 결과, 꽃가루의 형태와 발아율은 정상적으로 유지되지만 자기 꽃가루의 수정 능력이 약화된 새로운 계통이 만들어졌다. 완전 불임이 아니기 때문에 유지종자 생산도 용이하며 동시에 외부 꽃가루가 훨씬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교배 성공률을 자연스럽게 높일 수 있다.

이수경 박사과정생.
FLO5 유전자로 구현한 시각적 종자 선별 기술
여기에 연구팀은 현장 적용성을 높이기 위해 종자 자체에 ‘시각적 구분’ 기능을 부여했다. FLO5라는 유전자가 손상되면 종자 속 배유는 하얗고 불투명해진다. 반대로 정상 FLO5가 작동하면 종자는 맑고 빛이 투과되는 정상적 종자가 형성된다. 연구팀은 이 특성을 적극 활용해 부분 웅성불임 계통에 FLO5 돌연변이를 결합한 gtrd5flo5, gtrd9flo5 계통을 제작했다. 그 결과 한 포장에서 수확한 종자라 하더라도 불투명한 배유를 가진 쌀은 자가수분 종자, 빛이 투과되는 정상 배유를 가진 쌀은 잡종종자임을 눈으로 즉시 판별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시각적 마커는 육안 관찰은 물론 색이나 밀도를 인식하는 기존 종자 선별 장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잡종 벼 산업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들던 종자 선별 공정의 난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부분 웅성불임 벼의 효과 역시 실험을 통해 검증됐다. 연구진은 이 시스템이 실제로 외부 꽃가루 우위 환경을 만드는지 확인하기 위해 Golden Rice(황금벼)를 꽃가루 제공자로 활용한 경쟁 수정 실험을 수행했다. Golden Rice를 꽃가루 제공자로 활용한 교배 실험에서, 일반 FLO5 계통은 자가수분된 종자가 약 74%를 차지했지만, 부분 웅성불임과 FLO5 마커를 결합한 gtrd5flo5·gtrd9flo5 계통은 자가수분 비율이 4.7~10.3%로 크게 줄었다. 반대로 외부 꽃가루로 수정된 잡종종자는 60% 이상으로 증가해, 자기 꽃가루의 경쟁력을 조절하는 방식이 실제 작물 환경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함을 확인했다. 나아가 실제 잡종 벼 생산에서도 기술의 효용성이 검증됐다. gtrd5flo5 계통을 모본으로 생산한 F1 잡종 벼는 키, 이삭 수, 종자 수, 총 수확량 등 여러 농업 형질에서 양쪽 부모보다 우수한 잡종강세(Heterosis)를 뚜렷하게 나타냈다. 이는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이 ‘실험실 수준의 유전적 교정’에 그치지 않고 농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질적 성능까지 충족함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부분 웅성불임 벼가 실제로 외부 꽃가루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지 확인하기 위해 Golden Rice와의 경쟁 수정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부분 웅성불임 계통에서 잡종종자 형성 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이 확인됐다.

종자 산업 전체를 바꾸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연구팀의 성과는 단순한 기술적 개선을 넘어, 종자 산업의 생산 구조 자체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에 개발된 부분 웅성불임 기반 플랫폼은 온도나 일장 변화에 따라 불임 여부가 달라졌던 기존 2-계통 잡종 벼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별도의 유지 계통을 만들 필요가 없고, FLO5 시각적 마커를 통해 종자 선별 과정까지 대폭 간소화할 수 있어 생산 효율과 현장 활용성이 모두 향상됐다. 또한 CRISPR/Cas9 요소를 후대에서 제거해 비형질전환(non-transgenic) 계통을 확보한 점은 상업화 가능성과 제도적 수용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연구를 주도한 정기홍 교수는 “잡종 벼는 높은 생산성과 내병성을 갖추고 있지만, 종자 생산 과정이 기술적으로 복잡해 그 잠재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다”며 “이번 연구는 벼의 자가수분 능력을 정교하게 조절해 외부 꽃가루가 자연스럽게 수정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만큼 기존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종자 색만으로 잡종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시각적 마커 시스템을 결합함으로써 산업 현장의 가장 큰 병목을 해결했고, 앞으로 다양한 작물에서 활용 가능한 범용적인 하이브리드 종자 생산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논문 제1저자로 연구에 참여한 이수경 박사과정생은 “해당 시스템은 벼뿐 아니라 보리·밀·콩 등 다른 자식성 작물에도 쉽게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향후 다양한 작물에 적용된다면 국내외 식량 생산 체계 전반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팀이 구축한 플랫폼은 잡종종자 생산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공정 단순화 등 농업 산업 전반에 걸친 파급효과가 기대되며, 기후 변화가 심화되는 시대에 안정적인 식량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농촌진흥청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사업(RS-2024-00322278)과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SRC: RS-2021-NR060084)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 SDG 2 - 기아해소, 식량안보와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 SDG 9 - 사회기반시설 구축, 지속가능한 산업화 증진
  • SDG 12 -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패턴 보장
  • SDG 13 -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방지와 긴급조치
  • 정예솔(wg1129@khu.ac.kr)
  • 그린바이오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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