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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과 근대 건축

“근대 건축에서 장식의 억제는 곧 문화적 전환의 지표였다.”
장식과 근대 건축
20세기 초, 근대 건축에서 왜 장식을 억제하게 되었는가
220여 점의 사진과 설명으로 장식과 근대 건축의 관계를 생생하게 탐구하는 책
이관석 지음 | 152×225 | 296쪽 | 무선 | 24,000원
2025년 12월 24일 | ISBN 978-89-8222-817-9 (03600)
르코르뷔지에 연구자로 잘 알려진 이관석 경희대 교수의 신간 《장식과 근대 건축》이 출간됐다. 르코르뷔지에 건축과 현대 뮤지엄 건축을 주제로 다양한 저술 활동을 이어온 이관석 교수는, 그 저서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 출판콘텐츠 등에 선정되었으며, 이러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건축학회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신간은 근대 건축에서 배제되어 온 ‘장식’을 통해 근대 건축의 본질과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책에 수록된 220여 점의 사진과 설명은 근대 건축과 장식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 출판사 리뷰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 고딕 성당 내부를 화려한 빛으로 물들였던 장미창과 스테인드글라스, 바로크와 로코코 건축에 이르기까지 장식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시대의 가치관과 신념, 문화적 상징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장식은 오랫동안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러운 본능의 표현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왜 근대 건축가들에게 장식이 그토록 강하게 부정되었을까.
근대 건축 선구자들의 개혁적 움직임
이 책의 1부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근대 건축에서 장식이 축출되기에 이른 배경과 위기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부정적인 아카데미즘에 매몰된 미학이 예술과 의식 전반에 끼친 해악과 과도하고 부적절한 장식의 문제, 이에 대응한 다양한 개혁적 움직임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예술수공예운동과 아르누보 등 역사주의와 모더니즘의 전환기에 등장한 새로운 예술 운동들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며, 무장식적인 근대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지닌 의미를 짚어내기도 한다.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1908)가 장식 담론에 끼친 충격과 그 글의 진의를 여부도 살핀다.
새로운 시대를 희망했던 근대 건축의 선구자들에게 장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유물이자, 부르주아적 취향과 과시적 소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 속에서 장식 억제가 근대 건축가들에게 필연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보았다. 근대 건축에서 장식의 억제는 더 이성적이고 근대적인 표현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장식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새로운 감각과 공간 경험
이 책의 2부에서는 장식에 맞선 근대 건축에 기능미와 단순미가 도래하는 과정을 살피며, 이와 관련된 예술가와 건축가의 개별적‧집단적 의식을 조명한다.
기계와 산업이 건축에 미친 영향, 독일공작연맹의 성과와 장식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 장식 축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건축을 살피며, 인상주의에서 추상예술에 이르는 근대 회화의 실험들이 근대 건축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분석한다. 데 스틸(De Stijl) 운동 주역들의 인식을 통해, 건축이 조형적 추상예술로 확장되고 공간이 열린 시스템으로 이해되는 과정을 짚어내기도 한다.
장식이 제거되고 추상화되어 가는 근대 건축에서도 형태, 비례, 재료, 색채, 공간 구성 등을 통해 감성적·문화적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유효했다. 과거의 장식을 반복할 수 없었던 근대 건축가들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장식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미스 반데어로에와 르코르뷔지에라는 두 거장의 사례를 통해 전통적 장식이 사라진 이후에도 건축이 어떻게 의미와 감성을 조직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근대 건축에서 장식의 억제는 기능주의 윤리, 생산 방식, 사회적 이상 등이 교차한 결과였다. 저자는 건축을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자 사회 구성원의 생활양식과 정신을 물질적으로 구현하는 문화적 산물로 규정하며, 건축의 변화는 언제나 시대적 전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19세기 중반 이후 장식이 예술가와 건축가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고, 재료와 공간, 빛이라는 ‘건축 본질의 존엄성’ 앞에서 왜 부정되었는지, 장식을 거부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장식이 소거되어 가는 20세기 초반의 건축적 양상과 과정은 어떠했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장식이 떠난 빈자리가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졌는지에 주목하며,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건축가의 새로운 창조적 정신과 미학이었다고 강조한다.
건축에서 장식이 축출되는 이유와 과정을 고찰하는 이 책은 단순히 양식 변화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근대 건축의 사상적·문화적 전환을 통찰하게 한다. 이는 오늘날과 미래의 건축 담론을 확장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 차례
들어가는 말 •5
1부 장식의 위기
19세기 말 의식의 위기 • 21
아카데미즘에 빠진 미학 • 22
역사적 절충주의의 창궐 • 27
과도하고 부적절한 장식에 던져진 의문과 예술수공예운동 • 41
장식의 과도함과 부적절성 • 42
예술가들의 장식에의 개입 • 47
아르누보, 역사주의와 모더니즘 사이 전환기의 장식 • 61
새로운 예술로서의 새로운 장식 • 62
유럽 대륙을 넘어선 아르누보 • 79
아르누보의 성취와 실패 • 85
아돌프 로스의 수필 〈장식과 범죄〉의 영향력과 진의 • 89
20세기 장식에의 치명타 • 90
장식에 남겨둔 여지 • 98
2부 장식과 근대 건축
장식과 기능미 • 107
기계 미학의 대두 • 108
과학적 합리주의와 새로운 건축 미학 • 108
기계에 대한 근대주의자들의 인식 • 114
독일공작연맹과 산업 미학의 혁신적 원칙들 • 120
예술과 산업, 수공예의 협력 • 121
무장식과 ‘장식 없는 장식’ • 125
바우하우스와 새로운 양식 • 141
예술과 기술, 새로운 통합 • 141
새로운 미학, ‘바우하우스 스타일’ • 144
바우하우스 정신이 반영된 건축 • 150
장식과 단순미 • 163
모더니즘의 혁신적 예술 • 164
세잔과 1890년대 회화 • 164
입체주의와 근대 건축 • 171
추상예술의 특성과 근대 건축 • 176
데 스틸과 질서, 엄격함, 순수성의 교훈 • 180
새로운 예술로서의 데 스틸 • 180
신조형주의와 데 스틸 건축 • 182
두 근대 건축 거장의 장식에 대한 태도 • 201
미스 반데어로에와 “Less is More” • 202
고전주의의 덕목을 지닌 개혁주의자 • 202
단순화로의 귀결 • 211
정밀한 디테일과 물성의 차이로 받쳐진 건축 • 217
물리적 구조와 현상적 구조의 일치 • 226
르코르뷔지에의 ‘감동으로서의 건축’ • 230
장식 교육을 넘어 깨달음으로 • 231
그림 그리기와 건축적 실천 • 239
장식과 기계 미학에 대한 인식 • 242
인간의 감성을 두드리는 요소들 • 251
나가는 말 • 272
미주 • 277
참고 문헌 • 288
사진 출처 • 294
▣ 지은이_ 이관석李官錫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종합건설에 재직하며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현장을 경험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벨빌건축학교에서 투철한 근대건축 정신으로 무장한 앙리 시리아니가 리더인 교수들의 모임 그룹 우노(Groupe UNO)의 스튜디오에서 건축설계를 수학했고, 파리1-판테온소르본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근현대 건축사와 현대 뮤지엄 건축을 연구했다.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가이자 예술사학 박사로서 현재는 학생들과 건축을 교감하고 있다. 저서로 《빛을 따라 건축적 산책을 떠나다》, 《한국현대건축편력》, 《르코르뷔지에, 근대건축의 거장》, 《건축, 르코르뷔지에의 정의》, 《빛과 공간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현대 뮤지엄 건축》,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수업》, 《뮤지엄, 공간의 탐구》,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 등이 있으며, 역서로 《건축을 향하여》, 《프레시지옹》, 《오늘날의 장식예술》, 《느림의 건축을 위하여》, 《작은 집》, 《대성당들이 희었을 때》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장식이 과도하게 남용되고 사소한 수준으로 전락한 채 많은 건축물과 개별 예술품에 적용된 근원적인 이유는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기술 혁신과 새로운 제조 공정으로의 전환을 촉발하며 사회와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장식은 고전주의 작품의 신화적 표현을 기반으로 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많은 시간과 진정성을 요구하는 장식은 가장 위대한 오래됨과 품위의 과정을 구현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권력자와 부유층이 누리는 특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830년 이후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적 부의 증가에 힘입어 중산층이 새롭게 부유한 계층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은 귀족의 삶을 모방코자 했으며, 장식을 높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여기며 열광했다.
-43쪽
완벽한 장식에 대한 꿈은 오랫동안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속됐는데, 그들은 실용 과학을 활용해 자연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특정 물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장식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산층의 끊임없는 요구로 인해 과도한 장식이 결국 현상을 꿰뚫어 본 이들을 압도하게 됐다. 따라서 점점 만연해지는 장식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건강한 반작용, 즉 단순성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다.
-47쪽
예술수공예운동과 함께 역사주의에서 20세기 기능주의로의 전환 시기에 일어난 아르누보는 낭만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반(反)역사적인 예술운동으로, 1890년에서 1910년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가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아름다움의 추구를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은 19세기 말의 유미주의(唯美主義, aestheticism)와 동행하며 회화, 조각, 일용품, 건축 등 순수예술부터 거주 환경까지 폭넓게 퍼져나갔다.
-62쪽
19세기 시대 상황에 적합한 양식의 부재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던 아르누보는 이론적으로, 윤리적·정치적 관점에서 존 러스킨의 염원처럼 예술을 사회에 도입하고자 했다. 미술, 건축, 공예, 가구 디자인 등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예술을 추구해 실생활 속 예술을 실현함으로써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의 실현도 꿈꿨다. 그러나 실제로는 곧 반동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인간을 기술의 부담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면서 기계를 악마의 발명품으로 간주했고,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하고 수공예를 부활시켜 산업 시대에 적합한 장식미를 모색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아르누보가 선보인 비대칭적인 문과 창의 틀, 로지아(loggia), 말발굽 모양의 창문 등은 분명 독창적이었지만, 장식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기능성과 실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스타일의 과잉과 높은 제작 단가는 오늘날에 봐도 우려스러울 정도다.
-85쪽
아르누보 예술가들은 역사주의의 부흥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 언어를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미래지향적이고 혁명적인 태도는 이후 반(反)역사주의적인 근대 건축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됐다. 철과 유리의 미학적 가능성을 발견했고, 과거의 장식을 모방하지 않은 평면적인 장식 패턴이나 건물 모서리에 띠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과거 건축의 음영 있는 치장이나 고질적인 무게감을 덜어낸 것은 후일 1920년대의 평탄한 표면의 가벼운 근대 건축이 도래하는 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성에도 불구하고 아르누보가 수공예와 장식예술에 큰 비중을 둔 것이 문제였다. 아르누보도 예술수공예운동과 마찬가지로 수공예 중심의 고급 예술로서 제작 단가가 높아 대중적 확산에 실패한 것이다. 기계 생산과 대량생산이 중심이 된 근대 산업사회와의 조화에 실패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나라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다른 버전을 보였던 지리적 편차와 통일성 결여 또한 아르누보의 단명을 재촉했다.
-86쪽
건축가의 세계관, 자연관, 종교관 등에 따른 사고방식은 그의 작업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며, 작품에 반영된다. 건축 분야에서는 ‘수단’과 ‘목적’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며, 무엇에 중점을 더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108쪽
모더니즘은 예술과 문학뿐만 아니라 동시대 문화 속에서 움직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작동했다. 예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모더니즘의 본질이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 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시작한 자기비판적 태도의 발전 혹은 과장이라고 여겼다. 즉, 모더니즘의 성격이 특정한 원칙을 전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원칙의 포괄성을 더욱 완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비판하는 특별한 방법을 도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164쪽
데 스틸의 이론은 어떤 이들에게는 형식적 어휘였고, 또 다른 이들에 게는 철학적·윤리적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질서, 엄격함, 순수함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데 스틸은 평면성과 기하학적 형태, 단순한 재료에 대한 선호를 널리 퍼뜨렸으며, 장식 숭배를 해체함으로써 전후 건축의 길을 여는 데 크게 공헌했다.
-199쪽
시대에 맞지 않는 장식에 대한 르코르뷔지에의 거부 이유는 그가 쓴 《오늘날의 장식예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제목이 〈기계의 교훈〉인 일곱 번째 장은 기계에 대한 그의 시각을 알려준다. 이 책이 발간된 1925년은 강한 장식적 성향을 지녔던 아르데코(Art Déco)가 번성했던 시기로, 파리에서 국제 장식예술 및 근대산업예술 박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가 개최된 해였다. 르코르뷔지에는 방문객들에게 ‘장식된’ 물건들, 즉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장식적인 오브제들만을 선보여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운 이 박람회의 프로그램을 “잘못된 조화, 날조, 속임수”라고 비판했다.
-243쪽
르코르뷔지에에게 “건축은 원재료를 사용해 감동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 관계는 앞서 본대로 우리의 감각을 두드리기 쉽고 우리의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인 질서를 실현함으로써 조형적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이때 창조된 관계들은 우리의 내부에 깊이 공명해 우리 세계의 척도와 일치되게 느껴지는 질서의 척도를 우리에게 제공하며, 우리의 마음과 이해의 각종 움직임을 결정하게 되고, 그때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267쪽
이렇게 르코르뷔지에는 구태여 과거의 장식에 의존하지 않고 근대 건축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존 러스킨이 장식의 본질 중 하나로 생각한 아름다운 감흥을 자아내는 데에, 개성에 대한 모든 열망을 충족시키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도, 어떠한 부족함도 느끼지 않았다.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