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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 오검 문자부터 제임스 조이스까지 400~1921
김상욱 지음 | 152×225mm | 504쪽 | 무선
28,000원 | 2026년 10월 27일 발행
ISBN 978-89-8222-841-4 (93920)
▣ 출판사 리뷰
아일랜드의 1,500년 역사와 문화를 한 권으로 읽다!
문학 연구자의 시선으로 펼쳐낸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아일랜드와 제임스 조이스에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한 충실한 안내서
풍부한 문헌 자료, 90여 점의 사진·도판 수록
★추천사
“아일랜드 역사가 아일랜드인들을 어떤 모습으로 빚어왔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션 호이(주한 아일랜드 대사)
아일랜드는 오랜 기간 외세의 침입과 지배, 이에 맞선 저항과 전쟁, 종교적 갈등과 문화적 융합을 겪으며 복잡한 역사적 층위를 쌓아 온 나라다.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김상욱 지음)는 그 역사와 문화의 형성 과정을 세밀하게 따라가며 아일랜드라는 공간이 간직한 고유한 서사를 한 권에 담아냈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문학 연구자가 쓴 역사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저자 김상욱 경희대학교 교수는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 회장을 역임한 문학 연구자다. 저자는 아일랜드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정치적 사건의 이면에 놓인 언어와 문학, 기억과 상상력은 물론 법적 지위와 경제적 조건, 문화적 정체성에도 주목한다.
이 책은 아일랜드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든든한 입문서가, 유럽의 역사·문학·종교·법제사를 공부하는 독자에게는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오검 문자에서 제임스 조이스까지
이 책은 아일랜드 역사의 전체 지형을 시대순으로 다섯 부에 걸쳐 살펴본다.
1부에서는 오검 문자와 드루이드, 음유시인, 브레혼 법, 수도원 중심의 기독교 문화 등을 다룬다. 이는 아일랜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토대다. 저자가 직접 답사하며 촬영한 오검 문자 비석 사진은 초기 아일랜드어가 기록된 고대의 문자 유산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어 바이킹의 침입과 더블린의 형성, 노르만계 잉글랜드 세력의 진출, 중세 아일랜드에서 ‘새로운 아일랜드인’으로 불린 잉글랜드계 주민들의 등장 등을 살핀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가 다양한 정치 세력과 문화적 전통이 공존하고 충돌하며 형성된 복합적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2부와 3부에서는 튜더 왕조의 아일랜드 복속, 크롬웰 정부의 아일랜드 정복과 가톨릭교도 강제 이주, 아일랜드 화폐 제도, 18세기 아일랜드 사법 체계와 의회, 교단, 경제, 문화, 아일랜드 국가주의 등을 다룬다. 특히 종교와 법, 토지 소유 구조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아일랜드어와 영어의 사용 양상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 역사적 맥락도 짚어낸다.
4부와 5부에서는 가톨릭교도 해방운동과 감자 대기근, 아일랜드 자치운동과 토지 항쟁을 거쳐 1916년 부활절 봉기와 독립전쟁,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이르는 근현대사의 격변을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과 제임스 조이스를 통해 정치적 독립을 향한 움직임과 함께 형성된 아일랜드의 문화적 정체성 문제를 조명한다.
아일랜드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은 토착 게일계 주민뿐 아니라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과 그 후손의 역사적 경험까지 포괄하며 형성되어 왔다. 특히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은 게일 문화(아일랜드 토착문화)와 잉글랜드 문화 사이에서 양쪽의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이들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은 게일 문화(아일랜드 토착문화)와 잉글랜드 문화 간 문화변용 혹은 문화접변의 중간자 정체성을 형성했다. 또한 이들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간 절충적 민족의식을 가진 존재들이기도 했다.
_김상욱,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139쪽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교류와 혼종성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잉글랜드 왕권이 아일랜드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토착 사회의 정치적 자율성과 고유성은 점차 약화되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 문인들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한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정체성을 지닌 아일랜드였다. 즉, 영어를 사용하고, 보통법으로 다스려지며, 잉글랜드 국교회인 성공회 체제를 갖춘 나라였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그 대표적 인물인데, 그는 아일랜드인의 일상 언어였던 아일랜드어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도 했다. 이들의 존재는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이 단일한 민족적·문화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단의 역사적 경험과 이해관계 속에서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아일랜드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었다. 1893년 창립된 게일어 연맹은 아일랜드어를 보존하고 보급하며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되살리는 데 앞장섰다. 특히 1910년대 아일랜드 자치와 독립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게일어 연맹은 아일랜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게일어와 가톨릭의 전통을 되살림으로써 게일인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 아일랜드의 모습을 의식의 전면에 불러낸 것이다.
이 게일인의 나라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인들이 지배했던 아일랜드나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이 지배했던 아일랜드도 아닌 나라였다. 이러한 아일랜드는 게일어와 가톨릭이 문화적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나라였다.
_김상욱,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415쪽
이처럼 아일랜드의 문화적 정체성은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정치적 긴장과 이해관계, 문화적 기억이 충돌하고 교섭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와 아일랜드
게일어 연맹을 비롯한 언어·문화 부흥 운동과 맞물려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도 전개되었다. 이는 아일랜드어를 되살리고 아일랜드의 역사와 신화를 문학과 연극의 소재로 삼으려는 움직임이었다. W. B. 예이츠, J. M. 싱, 그레고리 부인 등 주요 문인들은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과 게일계 아일랜드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아우르는 이상을 모색했으며,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지적·정신적 동력을 공급했다. 이러한 문화운동은 정치적 독립을 향한 열망과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 운동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조이스는 민족의 역사와 신화적 과거를 재현하기보다, 20세기 초 더블린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에 투영된 아일랜드의 역사, 그리고 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를 세밀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작품 속 유대계 아일랜드인 레오폴드 블룸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 공존하는 혼성적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다. 저자는 블룸이라는 인물을 통해 아일랜드의 포용적 문화주의, 세계 평화적 민족주의를 읽어낸다.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는 한 나라의 역사를 통해 민족과 국가, 언어와 문화,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일랜드의 오랜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빚어내는지, 그 과정에서 문학과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추천사 8
머리말 10
1부 역사 초기 및 중세
1장 오검 문자 이야기(4~7세기) 21
오검 문자란 무엇인가 21
오검 문자에 관한 후대 문헌 30
2장 그리스도교와 패트릭 성인 35
드루이드 성직자들과 아일랜드 토속신앙 35
서력 431년 38
패트릭 성인(5세기) 42
초기 아일랜드 교회법(6~10세기) 54
수도원과 아일랜드 사회(6~10세기) 57
3장 초기 아일랜드 사회(5~10세기) 67
브레혼 법과 5계급제 67
전문 학사층(드루이드, 음유시인, 브레혼) 70
채무와 변제에 관한 브레혼 법 73
토지법(브레혼 법) 77
초기 및 중세시대 4개 지방과 왕국 78
4장 바이킹 시기(9~11세기) 86
795년, 바이킹들과 아이오나 대수도원 86
더블린, 바이킹 왕국 90
1014년, 클론타프 대격전과 바이킹 왕국의 쇠퇴 94
5장 노르만계 잉글랜드인 침략기(1166~1228) 99
렌스터 왕, 더모트 맥머로와 1166년 99
헨리 2세와 노르만계 잉글랜드 왕국 102
1170년, 리처드 스트롱보우 105
1171~1172년, 헨리 2세의 아일랜드 방문 109
교황 아드리안 4세와 1155년 아일랜드 교서 112
1175년 윈저 조약 117
존 왕과 1210년 아일랜드 헌장 122
아일랜드/잉글랜드 교권 충돌—멜리폰트 수도원 사태(1216~1228) 128
6장 중세 아일랜드 사회(1228~1534) 134
새로운 아일랜드인들의 부상—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 134
14세기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과 아일랜드풍 배척령 142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브루스와 아일랜드 민족주의(1315~1316) 146 중세 아일랜드 사회와 경제 152
15세기 잉글랜드와 아일랜드(1390~1534) 156
2부 근세
1장 튜더 왕조와 아일랜드 복속 169
헨리 8세와 아일랜드 봉건 영지 복속 169
1534년 수장령과 아일랜드 종교개혁 173
피츠제럴드 가문의 반란과 종교개혁 불복종(1565~1583) 178
얼스터 봉기와 반잉글랜드 9년 전쟁(1593~1603) 184
2장 올리버 크롬웰과 아일랜드 194
얼스터 지방과 잉글랜드 정착촌 건설(1607~1615) 194
1641년 가톨릭교도 봉기와 가톨릭 연맹(1641~1649) 201
크롬웰 정부와 가톨릭교도 강제이주(1650~1660) 215
크롬웰 이후—제임스 2세와 오렌지 공 윌리엄 3세 간 아일랜드 내전(1685~1691) 222
3장 근세 아일랜드 문화와 경제 230
1500~1600년대 아일랜드어 현황 230
1650~1690년대 아일랜드 경제 현황 233
17세기(1600~1750) 아일랜드 화폐 235
3부 18세기
1장 18세기 아일랜드 241
아일랜드 정부 241
아일랜드 사법체계 243
아일랜드 의회 현황 245
아일랜드 교단 현황 250
2장 아일랜드 국가주의의 부상 259
윌리엄 우드 동화와 화폐 주조권 논쟁(1722~1724) 259
1782년 아일랜드 입법권 독립 266
울프 톤과 1793년 가톨릭교도 구제법 274
아일랜드인 대동단결 협회와 아일랜드 독립운동(1794~1800) 280
1800년 영국–아일랜드 합병 286
3장 아일랜드 경제와 문화 290
18세기 아일랜드 경제 290
18세기 아일랜드어 및 아일랜드어 문학 299
18세기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 문학 304
4부 19세기
1장 가톨릭교도 해방운동 315
로버트 에밋과 아일랜드 독립운동(1803) 315
영국–아일랜드 정부(1803~1825)와 아일랜드 가톨릭교도 문제 323
아일랜드 종파적 집단주의와 1829년 가톨릭교도 해방 329
2장 감자 대기근과 다니엘 오코넬 341
다니엘 오코넬과 영국–아일랜드 합병 철회 운동(1830~1850) 341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1845~1850) 348
청년 아일랜드단의 부상(1842~1848) 359
3장 대기근 이후 아일랜드(1850~1870) 365
아일랜드 사회와 경제(1850~1870) 365
피니언주의와 윌리엄 글래드스톤 375
4장 찰스 스튜어트 파넬 시대(1870~1903) 387
아일랜드 자치운동과 토지 항쟁(1879~1882) 387
아일랜드 자치 논쟁과 파넬의 의회주의(1882~1891) 400
파넬 이후 아일랜드 정치(1891~1903) 408
5장 19세기 아일랜드 문학 421
게일 민족 문화와 아일랜드 문화 정체성, 그리고 근대 421
5부 20세기 초
1장 1916년 부활절 봉기 437
아일랜드 자치파 대 영국–아일랜드 합병파(1903~1915) 437
1916년 부활절 봉기(4월 24일~4월 29일) 444
2장 아일랜드 자유국(1919~1921) 458
신페인당의 부상과 아일랜드 자치당(의회당)의 몰락 458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영국-아일랜드 조약(1919~1921) 462
3장 제임스 조이스와 아일랜드 문학 472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1891~1921) 472
제임스 조이스 484
참고문헌 491
사진/도판 목록 498
▣ 지은이
김상욱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노던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남대학교 영어학부 조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어문 전공 교수이자 국제지역연구원 영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유토피아 문학』(2021), 『유토피아의 귀환』(2017), Critical Insights: Family(2012)가 있으며, 2008년 한국영어영문학회 우보논문상을 수상했다.
▣ 본문 중에서
오검 문자야말로 아일랜드에 살았던 토착인과 아일랜드에서 브리튼섬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하나의 인종-언어 공동체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히 웨일스 지방 남서쪽, 펨브로크셔(Pembrokeshire) 카운티는 옛 더비드라 불렸던 지역으로, 3세기 후반 10세기에 이르기까지 그곳을 통치했던 게일인 명망 가문의 흔적을 보여준다. 고대/중세 아일랜드어(게일 켈트어)와 고대/중세 웨일스어(브리튼 켈트어)로 표기된 더비드 명문가 왕들의 이름이 비슷한 음운론적 흔적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_41쪽
패트릭 성인전은 역사가 말하지 않는 초기 아일랜드의 기독교화 과정을 전설적 인물, 신화적 인물로 형상화된 패트릭을 통해 상상하려는 시도이다. 패트릭은 출생년도 415년으로 추정되는 역사 속 인물이지만,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허구 속 인물이기도 하다. 아일랜드가 기독교의 나라로 가는 문을 연 패트릭은 실제와 신화 간 변증법적 구상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 패트릭이 그의 신화를 잉태했다면, 신화적 인물 패트릭은 그의 역사성을 재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패트릭 성인전을 썼던 티레한이나 뮈르후가 시도했던 것은 “기록된 역사에 남아 있는 공백을 메우는 것”이었고 “그들이 가져다 쓴 것은 패트릭 성인에 관한 구비(口碑) 전설과 구전 설화들이었다.”
_54쪽
드루이드, 음유시인fili(=bards), 브레혼(법사)들은 고대・중세 아일랜드 사회의 법률적 관행들을 관장했던 대표적 식자 집단이었다. 그리스도교 도래 전, 이들은 만물에 존재하는 각종 신령의 초자연적 권능을 대리하는 자나 신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주술가 이전에 학식이 뛰어난 전문 식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의 뛰어난 학식은 이들을 때론 종교인, 때론 철학자, 천문관, 법관(율사), 음유시인, 문필가, 음악인, 의사, 국난을 예견하는 예언가로 만들었다. 그리스도교 문명 이전, 드루이드 층의 어떤 자들은 전문 학사로 법률적 판단을 요하는 사명에 종사하기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_70쪽
아일랜드 태생 잉글랜드인들, 즉 아일랜드 거주 잉글랜드 이주민에 대한 에드워드 3세의 지탄은 문화접변의 중간자 정체성과 민족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게일화된 잉글랜드인들의 역사적 곤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아일랜드 거주 잉글랜드 이주민들은 모국 잉글랜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즉, 잉글랜드 왕실은 토박이 아일랜드인들로부터 외지인인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을 경제적으로 수탈하는 침탈자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_140쪽
이러한 법령들은 모두 잉글랜드식 관행이나 풍습, 제도의 퇴화 혹은 퇴행을 막고 잉글랜드 왕실의 식민지 통제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령들이 겨냥하는 것은 결국 정복자와 피정복자를 구분하고, 피정복자의 권리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조치의 일환이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_146쪽
킬데어 백작 제럴드 피츠제럴드가 잉글랜드 왕실로 소환되어 런던탑(Tower of London) 정치범 수용소에서 옥사한 때가 1534년이었다. 그의 죽음은 더블린 행정부 수반이라는 지위를 남용한 죄로 체포되어 옥살이하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1534년을 기점으로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복속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잉글랜드 정부와 왕실의 아일랜드 직접 통치가 이 시기 이후 본격화했다. 이것은 봉건제 종말의 서막을 의미했으며, 잉글랜드 왕이 아일랜드 봉건 영주들에게 윤허한 자치령의 제한 및 폐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_169쪽
잉글랜드 보통법이 재산법의 기준이 되면서, 많은 아일랜드 토착민들은 조상 대대로 점유해 온 토지의 소유권을 상실할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아일랜드 전통 브레혼법에 따르면, 토지는 개인의 재산이 아닌 씨족 일문의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따라서 토지는 일문의 일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이용하는 공유재산의 일종이었다. 반면, 재산법 관련 잉글랜드 보통법은 집단이 아닌 개인을 토지의 소유권자로 인정하였으며,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우선시했다. 법적 문서 없이 땅을 점유해 온 아일랜드 토착민들은 땅에 대한 자신들의 정당한 소유권을 따질 법적 근거가 없었다.
_199쪽
17세기에 들어 영어의 확산에 위기 의식을 느낀 아일랜드어 상용 지식인들은 아일랜드어 보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옛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여 편찬하는 작업들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고대 아일랜드어 텍스트에 중세 아일랜드어나 당대 아일랜드어 주해문을 달아, 고어의 현대적 의미를 부가하기도 했다. 이 당시 수기된 필사본 200여 점이 아일랜드와 해외 박물관 및 도서관에 전해진다. 또한 이 시기 아일랜드 스토리텔링은 프랑스나 잉글랜드에서 유행한 로맨스, 모험담, 기사도, 마법 판타지를 번안한 것들도 있었지만, 켈트 신화를 다룬 서사와 아일랜드식 중세 로맨스 서사에 집중되었다.
_231쪽
아일랜드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조너선 스위프트식의 냉소는 사실 프로테스탄트 성직자 일반의 아일랜드어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를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일랜드인 대다수의 일상 언어가 아일랜드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에 반해, 가톨릭 성직자들의 아일랜드어에 대한 태도는 프로테스탄트 성직자들과 사뭇 달랐다. 대체로, 가톨릭 성직자들은 가톨릭 교의를 설법하는 데 있어, 아일랜드어 구사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
_301쪽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에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였다.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문인들은 대부분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로, 종교적으로는 이들 모두 영국 국교도였다. 예이츠가 그러했고, 그레고리 부인, 존 밀링턴 싱, 조지 윌리엄 러셀 모두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제임스 조이스만이 유일하게 가톨릭교도로 그는 아일랜드 토박이였다.
_484쪽